생활상식

소나무, 왜 아파트단지 명물되나?

오솔길(서울) 2009. 5. 2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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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야산에서 소나무를 조경용으로 불법 채취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두 달 사이에만 수십여명이 적발돼 입건됐다. 현행법에는 조경수를 불법으로 채취하다 적발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있다.

소나무가 갈수록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특히 ‘잘 생긴’ 소나무는 조경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됐다. 품격을 내세우는 고급 아파트나 도시 등에서 소나무가 각광받고 있다.

◇아파트 명물=올 초 입주가 완료된 GS건설 반포자이 단지 내에는 소나무만 1200그루가 심어져 있다. 강원도에서 가져온 대적송과 경북 청송 에서 기른 금강송 등이다. 지름 50~70cm인 소나무(그루당 1000만원 안팎)는 각 동 입구에, 1m의 80~100년생 소나무(2000만원 이상)는 입주민이 공동으로 쓰는 공원 등에 세워져 있다. 조경 예산에만 60억원을 부었다. 아파트 분양 때부터 “소나무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GS건설 상품개발과 박도환 과장은 “아파트 프리미엄은 주변 주택보다 소나무가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달라진다”며 “외부에서 봤을 때 쭉 뻗어 있는 소나무는 아파트의 고급스러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단지 내 소나무 숲이 한 폭의 명작이 된다는 것이다.

동탄신도시 우미린 아파트의 나무들도 여느 곳과 다르다. ‘수목원’ 같은 아파트다. 조경공사비만 70억원 이상이 들었다는 이 곳엔 강원도 등에서 공수해온 낙락장송 100여 그루(13~15m)가 시원스럽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평균 수령은 70~100년. 지름은 40~80cm로 그루당 가격이 1500만~4000만원을 호가한다.



우미건설 정세영 조경팀장은 “소나무의 조형ㆍ관상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며 “처음부터 소나무 공원처럼 느낄 수 있게 디자인 포인트를 잡았다”고 말했다. 소나무의 가격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수종과 수령, 굵기, 키를 포함한 전체적인 형태를 기준으로 값어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올해 인천 청라지구 분양을 시작할 예정인 한라건설은 산책공원 조경 설계의 1순위로 소나무 경관미를 내세웠다. 한라건설 홍보팀 손성국대리는 “소나무 조성 규모에 대해선 논의중이지만 아파트의 대표 이미지로 만들 예정”이라며 “그로인한 경제적 가치는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ㆍ지방도 소나무 프리미엄=서울시는 지난해부터 ‘디자인 도시’를 표방하며 중구 남대문로의 가로수를 소나무로 바꿨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을지로입구에서 한국은행 본점 남대문로까지 520m의 거리는 ‘기품있는 소나무 숲’을 본떴고 사업비만 22억이 소요됐다. 서울 강남역 7번 출구 부근에도 최근 소형 소나무 광장이 조성돼 인근 직장인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강원도는 아예 도 차제를 ‘소나무 명품도시’로 정했다. 청정 이미지를 살리는데 소나무만 한 게 없다는 판단이다. 강릉시는 지난해 강릉교도소에서 시작되는 도로 중앙분리대 1㎞ 구간에 높이 13m짜리 금강소나무 100여 그루를 심었다. 경포해변 백사장에도 해송 400그루가 자리해 있다.



수원시도 최근 송죽동 만석공원 6200㎡에 '정조시대 능행차 광장'을 만들면서 장송 45그루를 심어 '소나무 터널'을 만들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 화성(華城)과 연계해 '격 있는'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서다.

◇“소나무는 선비 기개”=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이었던 권영걸(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소나무의 이미지를 선비에 빗댔다. 고통의 세월을 이겨낸 선비의 기개가 디자인에 녹아들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소나무의 조형미는 고아하다”며 “아파트 조경수나 서울시 가로수 중 많은 것이 은행나무, 버진나무, 플라타너스, 벚나무 순인데 길게 쭉 뻗은 소나무를 심어야 도시 전체가 탁 트이고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김영기 학장은 ‘한국인의 조형의식’이라는 저서에서 “소나무의 선은 성장의 리듬과 연륜을 지각할 수 있게 하고 생명력의 기운이 생동함을 느끼게 한다”고 평했다. 한편 산림청은 소나무 군락지 곳곳에서 육성복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도심조경은 물론 문화재 복원과 도심 조경 수요로 소나무의 경제 가치가 급격히 커져 조림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지은 기자